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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즈 더 캣은 분노해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의 울어서는 안 되는 공주님처럼. 블레이즈의 세계에 방문한 크림을 위해, 블레이즈는 함께 코럴 케이브를 걸었다. 몇 번의 난통이 지나가고서야 겨우 잠잠해진 산호 동굴엔 어둠 외의 방해꾼은 없었다. “블레이즈 씨?” 문득 크림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멈춘 블레이즈는,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크림이 검지로 어딘가를 지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었다. “저기…….” 블레이즈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동굴 천장의 균열 사이로 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크림, 별들 가까이로 날고 싶니?” 물으며, 블레이즈는 새삼 오래된 레일 위를 훑어 보았다. 광차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레일은 여전히 같은 곳을 향해 뻗어 있었다. 묘하게도 블레이즈는 그 풍경에서 옅디옅은 애수를 느꼈다. 사라진 것들이 떠난 자리에도 길은 남는다……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논이 일러준 것도 아닐 터인데. “아니요, 블레이즈 씨. 으음…….” 상념을 일깨우려는 듯, 크림의 말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육분의자리가 보여서요.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육분의자리?” “네, 육분의자리! 블레이즈 씨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봄에 발견할 수 있네요! 함께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잠시 고민하던 블레이즈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은 뒤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겠니?” 하고 부탁했다. 크림은 잘 보이지 않는 별자리의 위치를 착실하게 알려주고선 “블레이즈 씨, 혹시 육분의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아시나요?” 하고 물었다. “아니. ……알려주겠니?” “육분의자리 이야기는, 다른 별자리가 가진 이야기와는 조금 달라요. 신화 속 영웅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어떤 천문학자가 잃어버린 관측기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별자리라고 해요.” “관측기구?” “네! 육분의요.” “그래, 육분의자리라고 했지.” “네. 그 육분의를 사용했던 천문학자는, 어느 날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대요. 하지만 20년 동안 함께한 육분의를 잊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하늘에 남겼다고.” 블레이즈는 찬찬히 크림이 못다 마무리한 설명을 이어붙인 뒤,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네 말대로 의외로구나.” “저도 처음 듣고서 깜짝 놀랐어요! 별자리라는 건, 원래 오래된 전설이나, 대단한 동물이나, 블레이즈 씨처럼 멋진 영웅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영웅이라니. 나는,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나가는 것 뿐이라고 했잖아. 가논이나…… 다른 이들도 많이들 도와주고.” 얼굴을 살짝 붉힌 블레이즈는 민망한 듯 헛기침한 뒤, 꺄르르 웃는 크림의 이마께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해맑은 온기가 와닿자, 어쩐지 심장이 수런거렸다. “잊고 싶지 않아서……” “……네?” “기억하기 위해서, 인가.” 어째서인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블레이즈는 다만 그 말을 조용히 되풀이했다. “……네! 멋진 이야기, 이지요?” 크림은 활짝 웃었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태로.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을 깊이 문지르는 상실감이 있다. 언젠가 크림이 말한 적 있다. 슬픔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 이라 했던가. 저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러한 것을 이미 아는가. 대체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기에. “……블레이즈 씨.”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블레이즈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크림은 한동안 묘하게 어두운 얼굴로 침묵했다. 한참 무언가를 속으로 곱씹는 듯하더니, 결국 블레이즈의 긴 옷자락을 가만히 잡아당겼다. “혹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에멜, 이라는 로봇에 대해 이야기하는 크림은 상당히 담담했다.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거기까지였다. 크림 자신도 “어렸을 때는 많이 울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잊은 건 아니지만……” 정도로 말했다. “여전히 좋아해요. 여전히…… 친구라고 생각해요.” 어떤 액체도 크림의 뺨을 타고 흐르지 않았다. 목소리는 간간이 흐려졌고 더 곧잘 떨렸지만, 그런데도 입에 담는 문장만은 그저 단정했다. 크림은 말했다. 에멜을 정말, 많이 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뿐이라고. 많이 울었지만, 지금도 아프지만, 슬픔보다 감사함이 더 크다고. “소닉 씨도…… 우셨지만, 저와 테일즈 씨를 달래주셨으니까요. 지금도 모험을 떠나시고, 저와 엄마께 종종 이런저런 안부도 전해주시고.” 크림은 눈물 젖은 눈을 하고서도 방긋 웃었다. “블레이즈 씨의 안부도 전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다시 이렇게 만나서 시간을 보내네요! ……너무 기뻐요, 블레이즈 씨. 다시 만나고,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된 게요…….” 조용히 들어주기만 하던 블레이즈는, 크림이 거기까지 말하고서야 겨우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마지막 음절이 혀끝을 뜨기 무섭게, 갓 피어오른 불씨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크림은 소닉만큼이나, 블레이즈보다 훨씬 상실에 익숙했다. 진실로 사랑하는 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으므로. 이 얼마나 참람한 일인가. “블레이즈 씨는요.” “……음?” “블레이즈 씨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무슨……” 크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사적으로 의문을 표했지만, 블레이즈는 이미 자신의 답을 알았다.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사. 세계를 구해야 한다고, 자신이 그래야만 한다고 믿던, 아이.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귀이 여겼던, 도무지 혼자 두질 못하겠는 사람. “그래…… 있는 것 같구나.” “어떤 사람인가요?” “갑자기 질문이 많네.” 블레이즈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다지 나무라지 않는 투였다. 가논이 곁에 있었다면 분명 당황했겠지. 어쩌면 크림의 눈동자 안에서 연원을 알 수 없는 절박함을…… 블레이즈도 이따금 느끼는 필사적인 감정들을 읽어내어서일 것이다. “죄송……”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소닉이 네 반만 예의바르면 참 좋으련만.” 농담조로 말한 뒤, 블레이즈는 되도록 나긋한 어조로 덧붙였다. “……모르겠구나.” “…….” “미안. 잘 모르겠어.” 블레이즈는 눈을 감았다. 별이 사라지자 누군가의 절박한 표정이 떠오른다. 기시감, 상실감, 그리움. 모든 것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블레이즈는 그를 모른다. 불행과 절망이 있었고, 불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처절한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끝없이 좇았던, 그걸 가능케 했던, 한 줄기 빛. 하늘의 테를 따라 밝게 빛나던 은빛. 그의 이름을, 블레이즈 더 캣은 모른다. 얼굴도 희미하다…… 눈물 젖은 시선만이 마음에 남은 듯.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 사람이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는 안다. 미래, 한 시절, 그러니까 ‘그의 현재’. 이상한 일이다. 미래와 현재가 어떻게 완벽하게 겹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모든 모순에도, 블레이즈는 다만 명확히 안다. 한 사람과 함께 견뎌냈던 세계와 시간을, 그 시절의 그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소닉 더 헤지혹이 줄곧 언질해주었던 바가 있었으므로. “크림.” 크림 더 래빗, 이 이세계의 아이도 필시 그런 탓에 육분의자리를 핑계삼아 위로를 건넨 것이겠지. 그런 마음을 담아, 블레이즈는 가만가만 미소했다. 마음속에서 직전의 대화를 반추했다. 사라진 육분의를 기억하기 위해 별자리를 만들었다…… 크림은 그것이 멋진 이야기라고 말했다. 블레이즈는 다시금 크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홀로 생각했다. 누군가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별을 올려다본다. 누군가는 미래를 찾기 위해 별을 올려다본다. “……고맙구나.” 그런 탓에 ‘내일’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빛난다. 올려다본 하늘의 별들은 말간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 블레이즈는 말없이 모든 감정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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