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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이 떠난 자리는 언제나 폐허다. 너클즈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마스터 에메랄드의 수호자로서, 너클즈는 늘 무언가를 지켜야만 했다. 가디언으로서 지켜야 하는 건 마스터 에메랄드뿐만이 아니었다. 챠오들을 지켜야 했고, 그 녀석들의 터전도 지켜야 했다. 엔젤 아일랜드는 너클즈 디 에키드나의 섬이었다. 이 세계 최후의 에키드나로서, 너클즈는 부유도 하나를 오롯이 내면의 어깨에 올려두어야만 했다.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줄곧. “야, 소닉.” 평소와는 달리 마스터 에메랄드 바로 앞이 아닌, 직접 만든 푹신한 잠자리에 대충 누워 있던 너클즈는 퍼뜩 목소리를 높였다. “……자냐?” 귀에 대고 속삭이기까지 했으나 소닉은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깊이 잠든 모양이다. “저러고 다니면서 잘도 안 얼어 죽었네…….” 한숨을 뱉은 너클즈는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처럼 거의 죽은 것처럼 숙면중인 소닉의 몸을 두꺼운 담요로 둘둘 말았다. 그런 다음 소닉의 몸을 침낭에 구겨넣고, 한쪽에 미리 설치해두었던 해먹 쪽으로 다가가 걸어두었다. 혼몽에 빠진 소닉의 얼굴은 앳되어 보인다. 저 망할 친구 녀석이 푹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표정이 인상에 꽤 많은 영향을 준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된다. 너클즈는 특히 자신에게 짓궂은 장난질을 쳐대며 킬킬거리던 낮시간의 소닉과 바로 앞의 저 녀석을 비교해보았다. 개성 있게 잘 빠진 이목구비에 어둠이 내렸다. 어두워서만은 아니리라. 소닉에게는 잿더미 같은 슬픔이 있었다…… 적어도 너클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녀석은 멈춰서서 아파하는 법을 모른다. 카오스의 감정을 정면으로 받아내어준 것도 그래서였지. 에멜의 폭주도, 사정은 복잡했지만, 아무튼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 맞부딪혔다. 마스터 에메랄드가 산산조각나고, 끝에는 에멜조차 완전히 망가졌지…… 소닉은 그제야 울부짖었다. 금세 괜찮아졌다. 너클즈는 그것을 보았다. 모두가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니까, 그래서……. 테일즈와 잠시 남몰래 대화했을 때, 너클즈는 자신의 해석본을 갈무리했다. 삐뚤빼뚤한 정리 속에서, 소닉은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또 괜찮은 척하는 녀석, 정도로 정의되었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짓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닉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달렸고, 사고를 치고, 사건을 해결하며 웃었다. 어떻게 저렇게 환한 얼굴로, 꼭 지금 이 순간이 에멜을 만나기 전의 어제처럼 떨쳐내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너클즈는 소닉이 펼쳐내는 모순 앞에서 계속 혼란스러워해야만 했다. 내면에 그토록 큰 짐을 더한 상태에서, 어떻게. 너클즈는 이따금 생각했다. “네 건 누가 받는데.” 오만한 자식, 이라거나 잔인한 녀석, 같은 진심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소닉은 한번 잠들면 좀처럼 깨어나질 못하는 주제에, 정말 세계가 돕기라도 하는 건지 들으면 저 녀석 기준에서 재미있어질 법한 발언만은 쏙쏙 잘만 듣고 눈을 떴다. 너클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호흡은 희게 얼어 별가루인 듯 스러졌다. 문득 뒤쪽에서 녹색 빛이 일렁거려, 너클즈는 마스터 에메랄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거대한 보석이 일정한 박자로 점멸중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너클즈는 마스터 에메랄드에 양손을 대었다. 광기처럼 어린 녹색 빛의 표면 너머로, 과거 천 년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침내 평온을 찾아 서로를 위로하듯 등을 기댄 티칼과 카오스의 모습이 꿈처럼 아른거렸다. 티칼은 카오스의 등에 기대어 있었다. 카오스 역시 길었던 자신만의 싸움을 끝낸 짐승처럼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위로하려는 것처럼. 아니 확실히,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저건.” 너클즈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스터 에메랄드에게 무어라 소리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깨달음이 몸안에서 메아리쳤다. 카오스와 티칼은, 마스터 에메랄드 안에서도 결국 서로가 있어 온기를 찾았다. 그곳은 결국 정념의 화로이므로. 서로의 분노와 슬픔을 받아주면, 비로소 그 자리에 구원이며 낙원이 있다. ……하지만 에멜을 잃은 소닉은? 그 녀석의 슬픔을 받아줄…… 어떤 가능성으로 잠시나마 빛났던 에멜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클즈는 어쩐지 미칠 것만 같아졌다. “어쩔 수 없는 가디언인가.” 자조하는 투로 중얼거리며, 너클즈는 마스터 에메랄드에서 떨어졌다. 쓴웃음이 입가에 잔물결을 그었다. 자신이 이 섬에 묶여있듯, 누군가도 소닉을 묶어둘 수 있다면 어떨까. 문득 에이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소닉의 착지점이야. 잠시라도 달리던 소닉을 멈춰세울 수만 있다면, 그 애의 쉼터가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해. 그게 소닉을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너클즈 역시 소닉을 사랑한다. 물론 에이미처럼은…… 용암 같은 연정을 심장에 품은 건 아니다. 오래된 장작 속에 남은 불씨 같은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어쩔 수 없이, 너클즈 디 에키드나는 소닉 더 헤지혹에게 몇 번이고 구원받았으므로. 너클즈로서도, 에키드나로서도. 그러므로 당연히, 너클즈 역시 에이미와 비슷한 소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로다. 화로가 되자. 떠도는 바람이 언제든 돌아와 식은 몸을 데울 수 있도록 언제나 불을 지펴두고, 식어빠지지 않도록 지키고 서는 거다. 그 녀석이 언제든 와서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그래.” 한 번 더, 너클즈는 쓰게 웃었다. 천천히 마스터 에메랄드를 떠나, 참 맛있게도 자는 소닉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근처엔 큰 바위가 하나 있었다. 몸을 날려 걸터앉으면, 꿈속에서 그리운 누군가와 재회중인 것인지 어쩐지 달콤한 낯이 된 소닉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봐. ……자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하는 소리인데, 들어도 못 들어도 상관은 없지만.” 심호흡한 뒤, 너클즈는 먼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길고 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내 친구 이야기인데……”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가 울렸다. 장작을 듬뿍 먹여두었으니 당분간 꺼질 일은 없을 터다. “다 티 나는데도 혼자 괜찮은 척은 더럽게 잘 하더라. 쳇, 내가 아무리 에그맨한테 많이 당했어도 그 정도 사리분간은 할 줄 안다고. 상태가 안 좋으면, 오히려 다른 녀석들을 만나러 싸돌아다니지. 멈춰 있으면 못 견디겠다는 것처럼.” 그런 확신을 아로새기며, 너클즈는 천천히, 소닉이 듣지 않아도 좋을, 아무래도 좋을 진심들을 하나씩 꺼내어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기운 나게 밥이라도 제대로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긴 험지고, 굳이 안 찾아와줘도 손님들이 참 많지만, 그 녀석은 주기적으로 안 봐주면 언젠가 사고를 크게 칠 것 같단 말이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매년 이맘때 녀석이 찾아오면 반드시 따뜻한 스튜를 먹고 갈 수 있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지켜줘야지.” 동이 터오고, 잿더미에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어차피, 평생…… 이 섬에서 마스터 에메랄드를 지켜야 하거든. 그래야 하는 참에 화로 하나 더 지키지, 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화로로 유지해주겠어!” 놀랍게도, 소닉은 너클즈의 독백이 완전히 끝나고서도 한참 지나고서야 겨우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눈을 뜨자마자 배가 너무 고프다고 투덜거려서 결국 너클즈와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게 될 정도로 길고 긴 하룻밤의 잠이었다. 꼭 어떤 슬픔을 조금 더 제대로 된 방식으로 견뎌보겠노라고 결심한 뒤 최후의 휴식을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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